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처드 1세 (문단 편집) === [[제3차 십자군 원정]]: 전천후 군사 천재 === >'''A skilled [[워리어|warrior]], gifted [[리더|leader]], and superb tactician.''' >'''숙련된 전사이자 타고난 리더, 그리고 뛰어난 전술가.''' >---- > 토머스 F. 매든 교수. [[https://www.catholicity.com/commentary/madden/03463.html|십자군 전쟁의 진짜 역사(The Real History of the Crusades)]] 십자군 전쟁에서 리처드가 보여준 야전 사령관으로서의 역량은 '''당대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술과 전략의 대가였고, 공성전의 천재였으며 동시에 병참과 보급의 달인이었다. 적 전술을 눈치채고 재빠르게, 그리고 과감하게 대처했다. 단순히 강한 용력뿐만 아니라 맹수와 같은 전술감각도 있어서 승부의 갈림길에서 본능적으로 전세를 뒤집는 결단을 내리곤 했다. [[살라딘]]의 서기관인 바하 알딘은 '리처드가 항상 격전의 한복판에 있는 동시에 모든 곳에 출몰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렇게 몸소 격전을 치르면서도 독수리같이 예리하게 작전 지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대부분 매체에서 전장까지 직접 뛰어들어 맹렬하게 전세를 이끈 용장으로만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원래 리처드 1세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처럼 전술가로서 공격적이고 차분했으며, 프랑스와 전쟁할 당시에는 불필요하게 싸움터로 달려가기보다는 살육의 현장에서 거리를 유지하고 지휘관으로서 적군의 숨통을 조이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무신]]보다는 [[군신]]에 가깝다. 또한 지형의 불리함으로 인한 십자군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해 예루살렘으로 남하할 때 반드시 속도가 느릴지언정 매우 안정적으로 나아갔으며[* 이를 간과하면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이렇게 된다]].], 적군의 아킬레스 건을 언제 어떻게 공격할지를 알았고 전투가 개시되기 전에 이미 승리할 상황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결코 운에만 모든 걸 걸지 않았다.[* 운에 올인하면 기의 [[하틴 전투]]가 된다.] 십자군이 감정에 치우쳐 현실적이지 않은 선택을 할 때마다 이성의 균형추가 되어주었다. 리처드는 보급과 통신과 병참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배 216척을 이끌고 잉글랜드에서부터 8천 킬로미터를 항해했으며, 동지중해 해안에서 적의 해운을 초토화했다. 리처드가 키프로스섬을 정복하고 해로를 장악했다는 것은 남쪽으로 행군해가는 그의 부대가 아무 문제 없이 보급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의 병참 의무는 (1) 다국적 십자군 부대가 충분한 식량과 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의 성벽 아래에 도착하게 하고, (2) 부대가 목표물을 향해 다가가는 동안 보급선과 통신선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보급품 수송 부대가 본대를 뒤따르게 함으로써 적에게 약점을 보이는 대신, 해군이 화물을 수송하게 함으로써 육군과 해군 간의 협력을 이룬 것이다. ||<#ffffff><(>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paintingandframe.com/richard_the_lionheart_during_the_crusades.jpg|width=100%]]제3차 십자군 당시 리처드 1세를 묘사한 상상화}}} || 리처드의 군사적 천재성은 특히 식량 장부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습관에서 잘 드러난다. 아크레 공성전에서 승리하고 예루살렘으로 남하하기 전에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일은 부대원 2만 명에게 열흘치 식량과 물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각 병사는 보급품 15킬로그램을 짊어졌다. 하루치 식량 1킬로그램과 장작 0.5킬로그램이었다. 이외에도 보병은 [[투구]], [[미늘갑옷]], 칼과 방패, 식기, 여벌의 옷 등을 챙겨야 했다. 리처드는 사막에는 강이 별로 없을 것이며 우물에는 사라센인이 독을 풀었다고 추정하여 1인당 매일 15리터씩 물을 배급했다. 기사 6천 명에게는 말을 먹일 건초 7킬로그램과 물 20리터씩을 추가로 배급했다. 대부분 기사들은 말을 세 필씩 데리고 다님을 감안하였다. 이렇게 총 20일간 행군하려면 리처드의 군대는 식량 1340톤과 물 300만 리터가 필요했다. 리처드는 사업가 같은 꼼꼼함으로 이 모든 병참 상황을 감독하고 관리해냈다. 리처드는 자신이 준비되지 않은 것은 다른 병사에게도 시키지 않았다. 일반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솔선수범해서 일했다. 앙브루아즈가 말하길 "왕이든 귀족이든 기사든 종자든 모두 함께 손으로 돌과 바위를 나르며 일했다." [clearfix]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